۱۳۹۰/۰۴/۲۲

سئول



سِئول (به کره‌ای: 서울) پایتخت و کلان شهر کشور کره جنوبی با جمعیت بیش از ۱۰ میلیون نفر، یکی از پرجمعیت‌ترین شهرهای جهان است.[۱]

اریخچه 

این شهر پایتخت دودمان‌های باکجه (۱۸ ق.م. - ۶۶۰ ب.م) و گوجوسان (۱۳۹۲-۱۹۱۰) هم بوده‌است.
پس از تشکیل کشور کره جنوبی در سال ۱۹۴۸، سئول به عنوان پایتخت این کشور برگزیده‌شد.

خواهرخواندگی با تهران 

در سال ۱۳۵۱ و در پی سفر غلامرضا نیک‌پی شهردار تهران به کره جنوبی، سئول به عنوان خواهرشهر تهران برگزیده شد. نامگذاری خیابان تهران در سئول و خیابان سئول در تهران به همین مناسبت انجام شده است.[۲] خیابان تهران در سئول در منطقه گنگنم قرار دارد مرکز تجمع ساختمان‌های بزرگ و دفاتر شرکت‌های عمده تجاری، بانکها و شرکت‌های صنعتی مانند سامسونگ و ال‌جی است.

English
 
Seoul , officially the Seoul Special City, is the capital and largest city of South Korea. A megacity with a population of over 10 million, it is one of the largest and most crowded cities in the world[4] The Seoul National Capital Area is the world's second largest metropolitan area with over 24.5 million inhabitants, which includes the Incheon metropolis and most of Gyeonggi province.[5] Almost half of South Korea's population live in the Seoul National Capital Area, and nearly a quarter in Seoul itself, making it the country's foremost economic, political, and cultural center.
Seoul has been a major settlement for over 2,000 years, with its foundation dating back to 18 B.C. when Baekje,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established its capital in what is now south-east Seoul. It continued as the capital of Korea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the Korean Empire.
Today, Seoul is considered to be a leading global city, ranking among the top ten global cities in the Global Cities Index of 2010.[7] It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financial and commercial centers,[8] home to major multinational conglomerates[9] such as Samsung, LG and Hyundai-Kia. In 2008, Seoul was named the world's sixth most economically powerful city by Forbes.[10]
Seoul has a highly technologically advanced infrastructure.[11][12] Its Digital Media City is the world's first complex for IT and multimedia applications.[13] Seoul was the first city to feature DMB, a digital mobile TV technology and WiBro, a wireless high-speed mobile internet service. It has a fast, high-penetration 100 Mbit/s fibre-optic broadband network, which is being upgraded to 1 Gbit/s by 2012.[14] Seoul Station houses the 350 km/h KTX bullet train and the Seoul Subway is the third largest in the world, with over 200 million passengers every year.[15] Seoul is connected via AREX to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rated as the best airport in the world by Airports Council International.

Name

The city has been known in the past by the names Wirye-seong (위례성; 慰禮城, Baekje era), Hanju (한주; 漢州, Silla era), Namgyeong (남경; 南京, Goryeo era), Hanseong (한성; 漢城, Baekje and Joseon era), Hanyang (한양; 漢陽, Joseon era), Gyeongseong (경성; 京城, during colonial era).[16] Its current name originated from the Korean word meaning "capital city," which is believed to be derived from the word, Seorabeol (서라벌; 徐羅伐), which originally referred to Gyeongju, the capital of Silla.[17]
Unlike most place names in Korea, "Seoul" has no corresponding hanja (Chinese characters used in the Korean language). The use of the old name Hanseong (漢城 or 汉城) is still common, however. The new Chinese name for Seoul is 首尔 (simplified), 首爾 (traditional) (Shǒuěr), which sounds somewhat similar to "Seoul" when pronounced in Mandarin Chinese.[18]

[ History

Settlement began in Baekje, Wirye-seong, in 17 BC. The location of that site is thought to be within the boundaries of modern day Seoul, and the remains may be at Pungnap Toseong or Mongchon Toseong. It became the capital of the Joseon Dynasty in 1394. In the Japanese 203.82.80.54 (talk) 14:12, 12 July 2011 (UTC)colonial period in the early 20th century, during which time the city was called Gyeongseong (경성, lit. "Capital City"; Japanese: Keijō (京城?)). After independence in 1945, Koreans renamed the city Seoul. In 1949, Seoul was separated from Gyeonggi Province and was granted status as "Seoul Special City". In 1950, during the Korean War, Seoul was occupied by North Korean troops and the city was almost entirely destroyed. The city was retaken by UN Forces on March 14, 1951. Since then, the city boundary has steadily grown into surrounding administrative divisions of Gimpo, Goyang, and Shiheung counties. The current boundaries were established in 1995.

[edit] Geography

Seoul is in the northwest of South Korea. Seoul proper comprises 605.25 km²,[2] with a radius of approximately 15 km, roughly bisected into northern and southern halves by the Han River. The Han River and its surrounding area played an important role in Korean history. The Three Kingdoms of Korea strove to take control of this land, where the river was used as a trade route to China (via the Yellow Sea). The river is no longer actively used for navigation, because its estuary is located at the borders of the two Koreas, with civilian entry barred. The city is bordered by eight mountains, as well as the more level lands of the Han River plain and western areas.

[Climate

Seoul lies in the border region between a humid subtropical and humid continental climate (Köppen climate classification Cwa/Dwa), depending on the definition. Summers are generally hot and humid, with the East Asian monsoon taking place from June until July. August, the warmest month, has an average temperature of 22.4 to 29.6 °C (72 to 85 °F) with higher temperatures possible. Winters are often relatively cold with an average January temperature of -5.9 to 1.5 °C (21.4 to 34.7 °F) and are generally much drier than summers, with an average of 28 days of snow annually.


서울특별시(—特別市)는 대한민국 북서부에 있는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2]이다. 1394년 조선 왕조의 정도(定都) 이래로 600년 이상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면적은 대한민국 전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 한반도 인구의 약 1/7인 약 1000만 명이 살고 있다. 한강이 도시 중앙부를 지나며, 경기도인천광역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동서간의 거리는 36.78km, 남북간의 거리는 30.3km이며, 그 넓이는 605.27km²이다.[3] 1986년 아시안 게임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된 국제적인 대도시이다.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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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학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수도(首都)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였던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4]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이 원래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金城)으로도 표기했다는 것에 착안하여, "쇠[鐵]-벌[源]"의 뜻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을 정확히 어떻게 발음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합의된 바가 없으며, 그 발음을 알수 있게 되는 것은 훈민정음의 창제 후, "셔블"이라는 표기가 등장한 이후이다.
서울의 영어표기 Seoul은 본격적으로 18-19세기말 한반도에 입국한 프랑스 선교사가 프랑스어로 표기한 Sé-oul(쎄울)에서 비롯되었다. 아,에,이,오,우 등 5가지 모음만 가진 프랑스어 구조상 '서'와 근접한 발음을 위해 'Se'로 표기하고 '울'은 oul로 하여 붙인 명칭이 'Seoul'이었기에 음절별로 엄밀히 구분하면 'Se-oul'이 되며 '서'를 'Seo'로 표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개정된 한글의 로마자표기법에서는 '어'를 'eo'로, '우'는 'u'로 표기하기로 하였기때문에 많은 이들은 서울의 영문표기를 음절별로 구분하면 'Seo-ul'인것으로 인식한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스페인 출신 IOC 사마란치 위원장이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발표때 '쎄울' 이라고 외친바 있다.[5]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와 같은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의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공식 지정하여 현재 사용중이다. [6]
서울이라는 단어가 1920년 부터 발행된 동아일보 신문 위에 THE DONG-A DAILY, SEOUL 이라고 적혀있는것으로 봐선 이전에 서울이란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인 것 같다.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20~ 동아일보)
그밖에도 단단한 '쇠'와 울타리의 '울'이 합처진 '쇠울'이 변형되어 '서울'로 정착이 되었다는 설[7]이 있으나, 조선 초기 문헌에서 서울을 '셔블'로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현대 한국어의 발음에서 유추한 민간어원설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서울을 조선 시대의 명칭인 한성을 따라 한청(중국어 간체: 汉城, 정체: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청[*])으로 적어왔다. 최근, 2005년 1월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서우얼(중국어 간체: 首尔, 정체: 首爾, 병음: Shǒuěr 서우얼[*])을 서울의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개정[8]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해당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제방송인 조선의 소리 방송의 중국어 프로그램에서는 2009년 현재까지도 '한청'으로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한성(漢城) 이외에도 경부(京府), 경성(京城), 경도(京都)[9], 경사(京師) 등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 서 볼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존재한다. 이는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서울"이 원래는 특정한 도시가 아닌, 나라의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는 방증이다. 19세기 후기에 접어들면서 대체적으로 경성(京城)이라는 표기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6년까지 공식적인 표기로서 경성이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 경성이란 표기는 일제강점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서울의 비칭(卑稱), 혹은 멸칭(蔑稱)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어 기피되고 있으나, 일제가 서울이라는 말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경성이라는 표기를 강요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출처 필요]
또한, 근대에 존재했던 서울의 한자 음차 표기로서,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사용한 표기인 徐蔚이 있다. 하지만 다른 문헌에서 해당 표기가 발견되지 않으므로, 이것이 일반적인 표기였다고 보기는 힘들다.[출처 필요]
서구의 고지도에서 서울은 보통 중국측에서 한성을 부르던 발음에 따라 Hantsing, Hanxing 등으로 표기되다가, 18세기 후반 이후 현지의 발음을 따라 Séul, Seoul 등의 표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출처 필요] 그리고 이 표기가 오늘에 이른다.
또 하나의 가설은 서울이 산으로 둘러쌓여 눈이 오자 눈이 울타리의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설울이라고 불리다가 다시 서울로 바뀌었다는 가설인데, 민속적으로 내려오는 설화와 같은,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편집]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서울의 역사입니다.
고생대 때는 서울이 바다였으나 중생대 때부터 육지가 되었다. 서울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있다. 삼국시대에는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백제의 수도였으며 삼국의 주도권 쟁탈전이 가장 치열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1067년 (고려 문종 21) 때 3경(三京)의 하나인 남경(南京)으로 승격되면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조선 태조1392년 개경(개성)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한양(漢陽)으로 천도했다. 당시 서울로 도읍을 정한데에는 풍수 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95년에는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四大門) 안 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라 하여 도성 밖 10리(약 4km)까지가 해당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한성부는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그 지위를 격하시켰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창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 및 이용성이 매우 심각하게 왜곡·훼손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다시 서울로 고쳐지고 1946년 9월 28일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10] 이후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6월 28일에 점령했으나 9월 28일에 다시 수복을 하였고 1.4 후퇴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지만, 1951년 3월 14일에 두번째로 서울을 수복하고 재건과 경제 발전을 이루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의 범위는 20세기 초까지 종로구, 중구, 용산구 정도로 현재 흔히 말하는 한강 이북의 강북 일부에 불과했으나 1936년, 1949년, 1963년, 1973년 등 몇 차례에 걸쳐 인접한 경기도 지역 일부를 편입하는 형식으로 현재와 같은 규모로 성장하였고, 1995년 3월 1일 광명시의 일부분이 금천구에 편입된 것[11]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확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서울 인근에 위치한 위성도시들의 성장으로 수도권을 형성, 거대한 도시 구조가 되었다.

[ 지리


북위 37° 33′, 동경 126° 59′의 한반도 중서부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 간의 거리는 36.78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km²이다. 한강이 도시를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흐르며, 도시의 중심에는 남산, 외곽은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우면산 등이 경기도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

[] 지형

[ 도심

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12]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12]
이러한 지형은 조선시대에 잘 이용되었다.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12]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12]

[편집]

서울의 산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의 접촉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도봉산(717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관악산(629m)이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산, 수락산, 아차산이 있다.[12]

[ 임야

서울의 임야면적은 157.35km²(2008년 기준)이다.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km², 관악구에 17.53km², 강남구에 16.11km²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13]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14]

[ 한강과 하천

강북과 강남 사이에는 남산 남쪽을 북동-남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한강 하류가 지나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와 잠실은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이 섬은 제방을 쌓아 신흥 아파트 단지가 되어 새로운 주택지로서 발달되었다.한강물은 광장·뚝섬·노량진, 멀리는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서울의 음료수·공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12]
한강은 일제 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부리도의 남쪽 물길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15]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2030년 완성을 목표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계획이 수립되어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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